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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에 관한 리뷰(Coffee Review)

[도전! 커피테이스터_기사 풀이] ‘파이프 담배향’을 커피의 결점으로 꼽는 대담함에 대하여

박영순 교수님이 매일경제에 [도전! 커피 테이스터]라는 이름으로 커피향미에 대한 기사를 연재하십니다. 일반인이나 커피를 처음 대하시는 분들에게는 다소 어려운 내용일지라, 나름대로 핵심내용에 대해 쉽게 전하고자 합니다.

 

[기사내용]​

매일경제"BIGS" - ​ ‘파이프 담배향’을 커피의 결점으로 꼽는 대담함에 대하여

  
 
>>기사내용
 
커피에서 파이프 담배(Pipe tobacco) 향이 난다면 품질이 어떻다는 것일까?
주변의 반응을 보면 대체적으로 부정적이다. 담배라는 말에 긍정적인 반응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제 아무리 골초라해도 ‘몸에 해로워 끊어야 하는데…’라고 푸념하기 마련이다.  

 

 

 

▲ 커피를 진하게 볶으면 건류반응에서 비롯되는 무거우면서도 자극적이며, 향신료처럼 복합미가 느껴지는 향미가 피어난다. 시가향도 그 중의 하나로 꼽힌다. 사진은 하와이 코나의 한 농장에서 로스터가 커피를 진하게 볶아 배출하는 모습.(사진=CCA)

 

 

그러나 시가(Cigar) 향이 나는 와인이라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강건한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품종으로 빚어 오크통에서 장기간 숙성하는 보르도 메독(Medoc)와인의 면모 중 하나가 시가향이기도 하다. 특히 마고(Margaux), 라투르(Latour), 라피드 로췰드(Lafite Rothschild), 오 브리옹(Haut-Brion) 등 그랑 크뤼(Grand Crul)와인이 오크통 숙성을 거치며 갖추게 되는 부케(Bouquet) 중 으뜸으로 꼽는 게 시가향과 가죽향이다.

귀하기로 소문난 보이차(Puer tea)도 덖고 퇴적해 후발효하는 과정에서 그윽하면서도 독특한 자극을 주는 시가의 뉘앙스를 갖게 된다. 토탄(Peat)을 태워 맥아를 건조시키는 스카치위스키와 과일을 첨가해 숙성하는 벨기에 에일 맥주에서도 시가향은 진중하면서도 생동감을 부여하는 멋진 향미를 표현하는 도구이다.

파이프 담배와 시가는 서로 다른 것인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향미가 미묘한 차이를 보이지만 커피를 묘사하는데 둘 다 긍정적인 표현이다. 담배와 관련한 용어를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은 채 사용하는 데에서 혼란은 시작된다. 

 

 

 


▲ 와인을 숙성하는 오크통 제작의 마지막 단계. (사진=CCA)
 
 
‘타바코(Tobacco)’가 가장 폭넓은 의미를 지닌다. 식물로서의 담배를 지칭하는 동시에 모든 담배의 재료로 쓰이는 말린 담뱃잎을 뜻한다. 원료로 쓰이는 썰지 않은 잎은 ‘잎담배(Leaf tobacco)’라고 따로 부르기도 한다.

‘시가’는 담뱃잎(Tobacco leaf)을 통째로 돌돌 말아서 만든 담배이다. 중심과 중간, 겉을 싸는 각각의 잎을 무엇으로 하고 비율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향미가 달라진다. 어떤 첨가물도 없으며, 완제품이라고 해도 발효와 숙성이 진행 중이다. 향미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선 습도, 온도, 광도 등 보관 상태를 적절하게 유지해야 한다.

‘파이프 담배’는 담뱃대에 재기 위해 썰어 둔 잎담배이다. 빨림이 뻑뻑하지 않도록 잎담배의 조각들이 너무 잘아선 안 되고, 향기를 담아두기 위해 적정한 습기를 품고 있어야 한다. 축축함 덕분에 건류반응(Dry distillation)에서 비롯되는 향신료처럼 깊이감이 있고 식물체에서 나오는 생동감이 더 두드러진다. 시가는 보다 건조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향긋하고 가벼운 느낌을 들게 한다. 물론 양측의 향미 차이는 미세하다. 향긋하다지만, 니코틴이 주는 강한 인상만큼이나 말린 여느 식물과는 다른 무거움과 두터움, 알싸한 자극 등의 존재감이 느껴진다.

잎담배 특유의 냄새는 니코틴과 타르의 영향이 크다. 니코틴은 뿌리에서 합성돼 잎에 축적되는데 휘발성이 강하기 때문에 적은 양으로도 자극적이다. 빛이나 공기와 접하면 노랗게 변하기 때문에 담배에 찌든 노르스름한 벽지만 봐도 니코틴이 뿜어져 나오는 듯하다. 타르는 잎담배에 들어 있는 성분이 아니라 태울 때 연기에서 발생하는 물질인데, 묘하게 성분이 니코틴과 같은 피리딘 계통이다.

오래 방치된 원두에서 담배냄새가 날 때는 ‘꽁초’, ‘재떨이’, ‘담뱃갑’등의 냄새라고 하는 게 옳다. 니코틴과 타르가 뒤섞인 냄새가 역하기 그지없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피는 담배는 시가렛(Cigarette)이다. 정확한 우리말 표기는, 썬 담배를 얇은 종이로 말았다고 해서 ‘지궐련’이다. 지궐련은 제조과정에서 거친 맛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각종 화학물질을 넣고, 다시 인공의 이 냄새를 감추기 위해 당과 향료 등을 넣기 때문에 향기가 시가나 파이프 담배와는 아주 거리가 멀다.

‘르네뒤카페(Le Nez Du Cafe)’의 33번병은 ‘파이프 담배’이다. 아로마키트를 만든 장 르누아르(Jean Lenoir)는 “이 향기는 깊은 가을 더미 속에서 탁탁거리며 타는 낙엽을 연상케 한다(This smell reminds one of a fire crackling underneath the dead leaves in autumn).”고 했다.
 

 

 
▲ 오크통 내부를 불로 그을리기 때문에 와인이 숙성하면서 은은한 시가향을 빚어내기도 한다. (사진 = CCA)
 
 
촉촉한 잎담배가 그을린 오크통의 뉘앙스를 풍길 수 있는 사연이 있다. 수확한 담뱃잎을 그냥 말리는 게 아니다. 커피가 가공을 통해 소중한 향미를 얻듯이 담뱃잎도 화력건조, 그늘건조, 선 드라이(Sun dry) 등을 거치며 자연의 매력적인 면모를 간직한다. 이어 발효와 숙성의 과정 속에서 온화하면서도 복합적인 향미로 치장한다. 그런 시가향을, 파이프 잎담배향을 향미의 결점을 표현하는데 끌어다 쓰는 것은 커피애호가라면 두려워할 일이다.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장, 사진 제공=커피비평가협회(CCA)] 
 
 
 
>>기사풀이
선입견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도움이 될때가 많다. 처음부터 아무 견해도 없이 논리와 판단을 내리기엔 시간과 수고로움이 여간아니다. 하지만 한번쯤은 그 인내와 노력을 되짚어봐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 ​‘파이프 담배향’이 그렇다.
처음에 우리나라에 담배(Tabacco)가 들어왔을적에는(임진왜란 이후) ​담배를 약초라 생각해 신분이나 나이를 불문하고 피울수 있었다. 이것이 점점 하층민들은 함부로 담배를 피울수 없게끔 ​되어지면서 옛날이야기할 때마다 등장하는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이라는 말도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나 스스로의 기억도 그렇다. 예전에는 담배가 나쁘다는 시선이 그다지 없었는데, 요즘에는 길거리에서 담배피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만큼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견해가 달라지고 다른 필요성이 생긴다.
​​지금 이 시기에 ‘파이프 담배향’이 그렇다. 담배라는 단어에 미리 부정적인 이미지를 덮어 씌운게 아닐까? 인내와 노력을 기울여보자. ​각각의 명칭을 분명히하면서 좋음과 나쁨을 구분시켜보자.
‘타바코(Tobacco)’가 가장 폭넓은 의미, ‘시가’는 담뱃잎을 다른첨가물 없이 말아둔것이다. ‘파이프 담배’는 크게 썰어 둔 잎담배이며. 적정한 습기를 품고 있다. 시가는 와인에서는 좋은 향기로 취급한다. 그리고 시가와 파이프담배 둘다 다른 첨가물이 없는 자연 그대로의 향이다.
문제는 '시가렛(Cigarette)'이다. 각종 화학물질, 당과 향료 등을 넣기 때문에 앞에서 얘기한 시가나 파이프담배와는 다른 향이 나온다. 그리고 시가렛이 바로 한국사람들이 피우는 "담배"인것이다. 우리는 이 시가렛과 혹은 담뱃재, 다피우고 난 담배꽁초의 느낌에서 아마도 이미 선입견을 가지고 담배향을 대했으리라.
하지만 담배향은 그 자체로는 결점이 아니다. 오히려 은은하고 가벼운 향기가 느껴진다면 더 깊이있고 매력적인 커피라고 봐야하지않을까.

[오두환 - 커피비평가협회(CCA) 강사]